소개
'피아니스트'는 2002년 개봉한 영화로 우리나라에선 2003년에 개봉했으며 영국과 독일, 폴란드, 프랑스 등 유럽 여러 나라가 합작하여 제작한 작품입니다.
영화 배경
폴란드 태생의 유대인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Władysław Szpilman)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독일, 폴란드, 영국 등 유럽대륙의 합작품으로 총 제작비 3천5백만달러(약 420억원), 1천명이 넘는 스텝과 연기자, 그리고 엄청난 크기의 촬영세트가 이 영화를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폴란드인과 유대인 배역은 영국, 폴란드, 미국 출신 배우들이 나눠서 맡아 작품 전반적으로 영어를 쓰지만 독일군 배역은 독일어를 쓰는 독일 배우들이 맡아 독일어로 연기해 몰입감을 높였습니다.
폴란스키 감독은 편향적으로 유대인은 희생양으로, 폴란드인은 나라를 잃은 애국자들로, 나치 독일은 무조건 전범으로 비춰주는 여타 홀로코스트 영화와는 다르게, 제2차 세계 대전에서 나타난 여러가지 인간상을 균형있게 비추려고 노력했다고 합니다.
CG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폭파 장면이나 기타 장면을 찍었기에 제작비가 많이 들어갔습니다. 주요 엑스트라들 전부 폴란스키 감독이 일일이 면접봐서 캐스팅했다고 합니다.
제작진은 주인공 슈필만 역에 유대인 분위기가 짙게 나는 배우를 원했는데, 온 유럽을 뒤져도 마땅한 배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폴란스키가 브로디를 처음 만났을 때 '그래, 바로 이 사람이야'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피아니스트 명장면
줄거리
폴란드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이 폴란드 공영방송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중 방송국이 포격을 당하여 연주 도중에 바깥으로 피합니다.
1939년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슈필만과 그 가족들은 바르샤바에 고립됩니다. 슈필만의 가족은 독일의 침공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선전포고 방송을 들으며 환호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폴란드에 군사개입을 하지 않았고, 폴란드에서는 유대인에 대한 차별이 시작됩니다. 바르샤바를 점령한 독일군 사령부는 유대인들에게 다비드의 별 휘장을 달도록 지시해 유대인임을 나타내게 합니다.
슈필만은 호감있는 첼리스트 도로타와 찾아가는 카페마다 유대인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있어 들어가지도 못합니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에 대한 차별을 심화하여 바르샤바에 대규모 게토를 조성해 3년 동안 그들을 격리하기로 결정합니다. 결국 수 많은 유대인들은 그 게토 안으로 수용되게 되어 이 과정에서 슈필만은 도로타와 헤어지게 됩니다.
게토로 이주한 슈필만과 가족은 가족끼리 흩어지지 않은 것 만으로 감사했지만, 그곳에서는 돈 벌기도 어렵고 음식 구하기도 힘들어 유대인들은 그렇게 길바닥에서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슈필만은 당시 갖고 있던 물건을 팔다가 게토 내 식당에서 피아니스트로 근무하게 됩니다.
그래도 유명한 피아니스트였던지라 알아보고 그를 돕는 이들이 있었는데 돌렉과 마요렉이었습니다. 게토 안에서도 사람들의 계몽과 저항운동을 하며 일하던 돌렉은 가족들과 신문을 만들어 뿌리고, 마요렉은 돌렉과 같은 이들을 도우며 힘있는 지인을 유대인들과 연결시켜주는 일을 했습니다. 슈필만도 그들을 돕고싶어 했으나 너무 유명해서 안되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라며 돌렉은 거절합니다.
한편 유대인 경찰에 있던 이츠하크는 헨리크와 슈필만에게 유대인 경찰을 하자는 제안을 합니다. 하지만 헨리크는 동포 팔아먹는 짓은 안한다고 하고, 슈필만은 이미 직장이 있다며 거절합니다.
나치는 유대인을 대이동 시키고 슈필만과 가족을 비롯한 노동자들을 밖으로 끌고 와 몇몇을 지목하고 트럭에 태워 가버립니다. 어느 정도 인원이 추려지면 나치 독일군은 노약자부터 먼저 수용소로 보내 처리합니다. 슈필만도 가족들과 함께 끌려갈 처지였지만 이들을 통제하다 슈필만을 본 이츠하크의 도움으로 가족 중 유일하게 빠져나오게 됩니다.
게토로 도망가서 노역을 하던 슈필만은 게토를 빠져나와 지인들의 도움으로 숨어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도 저항운동 하다 체포되고, 슈필만이 숨어지낸 사실이 이웃에 들통나자 그곳을 빠져 나옵니다. 비상시 연락처에 적힌 주소를 찾아 다른 사람을 찾아가는데 이 사람이 예전에 호감있었던 도로타의 남편이었습니다.
도로타와 남편의 도움으로 새로운 도피처를 마련하지만, 도로타 부부의 부탁으로 슈필만을 돕기로 했던 사람이 도피자금을 갖고 도망쳐서 그들은 영양실조에 걸릴만큼 먹지 못하며 고생합니다.
이후 도로타 부부도 전쟁을 피하기 위해 이주하고, 슈필만은 혼자 남아 살게 됩니다.
게토 폐건물 다락방에 숨어 게토를 뒤져가며 먹을 것을 구해서 살던 중 폐허가 된 집에서 큼직한 피클(Ogorki) 통조림을 발견합니다. 통조림 따개가 없어서 방법을 찾다가 벽난로 쇠꼬챙이로 통조림을 따려는데 떨어져서 통조림이 바닥을 굴러가는데, 그 앞에 나치 독일 장교가 있습니다.
독일군 장교인 호젠펠트는 슈필만이 유대인 도주자라는 걸 알면서도 여기에 사냐, 직업이 뭐냐고 묻는데, 슈필만은 그의 질문에 '피아니스트였다'라고 답합니다. 호젠펠트는 슈필만에게 피아노 연주를 시켰고, 슈필만은 자신이 피아니스트라는 점을 증명하기 위해 생에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연주를 합니다.
슈필만의 연주가 마음에 들었는지 유대인 슈필만을 즉시 처형하지 않고, 여기서 숨어 사는 유대인이냐고 물어보고, 맞다고 대답하자 어디서 숨어 사는지, 먹을 것은 있는지 확인하고 나갑니다.
그 이후, 이 건물에 독일군 사무실이 들어서고, 호젠펠트가 슈필만의 은신처에 식량을 지원해주며 숨겨줍니다.
1945년 1월, 독일군은 러시아에 밀려 퇴각하고 있고,. 호젠펠트는 마지막으로 슈필만을 만나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그는 슈필만에게 큰 음식 꾸러미와 함께 자신의 코트를 줍니다.
독일군이 떠난 후, 폴란드 동부군이 온 걸 보고 숨어 있던 생존자들이 하나둘 나온 걸 보고 슈필만도 밖으로 나와 살아남았다는 기쁨에 잠겨 사람들을 막 껴안으려 달려가는데, 호젠펠트가 준 독일군 코트를 입고 있어 겁먹은 여자가 소리치자 독일군으로 오해 받아 소련군이 총을 쏴서 하마터면 총에 맞을 뻔했습니다. 근처 건물로 달려가 총격을 간신히 피한 뒤 자신은 폴란드인이라고 소리쳐 확인받고 겨우 오해를 풉니다.
전쟁이 끝난 후 폴란드 인민 공화국에서 피아니스트로 다시 활동하게 된 슈필만은 동료 음악가로부터 호젠펠트가 수용소에 갇혀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은혜를 갚기 위해 수용소를 찾아가지만 이미 그 수용소는 철거되어 호젠펠트는 다른 곳으로 보내지며 끝내 슈필만과 호젠펠트는 만나지 못합니다.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슈필만의 모습이 나오며 자막으로 슈필만은 88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호젠펠트는 소련 포로로 있는 동안에 사망했다고 나오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총평
루튼토마토 신선도 95% 관객점수 96%로 아주 높게 나왔고,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비롯해 영국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남우주연상, 각색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역대 황금종려상 수상 영화 글로벌 흥행 TOP 10에서 5위로 선정될 만큼 흥행에도 성공한 작품입니다.
나의 리뷰
홀로코스트 영화인데도 잔혹하게 유대인을 학살하는 모습만 보이지 않고, 다각도로 여러 모습을 보여준 게 더 리얼한 모습 같아 좋았습니다.
호젠펠트는 실제로 슈필만 뿐 아니라 많은 유대인을 몰래 도와준 군인이었다고 하는데 포로수용소에서 죽었다는 걸 보며 안타까웠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호젠펠트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은 그는 폴란드어를 배워 폴란드인들과 친하게 지내고, 성당을 찾아가 폴란드식 고해성사를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포로수용소를 짓는 임무를 맡은 동안엔 자기 직권을 남용하여 폴란드인들이 가족과 접촉할 수 있도록 하고 정해진 형기보다 일찍 내보냈습니다.
1945년 소련군에게 붙잡혀 25년형을 선고받아 고문 당했고, 고문후유증으로 추정되는 흉부대동맥 파열로 1952년에 사망했습니다. 폴란드인들이 그가 한 행동을 알려 탄원했지만 소련은 독일군에게 자비가 없었습니다.
슈필만은 그를 구하지 못한 것을 평생 안타까워했고, 슈필만의 아들인 안제이 슈필만이 호젠펠트를 이스라엘에 위치한 홀로코스트 기념관인 '야드 바솀'에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건 '이이니 세계의 의인'에 추가해 달라고 요구했고 2009년에 추가되었습니다.
홀로 코스트 영화 리뷰를 쓰며 독일 장교에 대해 이렇게 길게 뒷 이야기를 쓰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 건 처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