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
'제8요일'은 1996년 개봉한 프랑스 영화로 벨기에 감독 자코 반도르말이 제작하였습니다.
성공한 세일즈 강사지만 아내와 별거하고 자녀와 멀어진 아리는 비오는 밤에 운전을 하다 우연히 요양원에서 탈출한 다운증후군 장애인 조르주의 개를 치면서 영화는 시작 됩니다.
영화 배경
기독교의 관점에서 일요일, 즉 '주일'을 The Eighth Day라고 의미합니다.
중세 시대 때 이미 제7요일이자 주의 마지막인 안식일(토요일)과 비슷하게 주일(일요일)을 제8일이라고 불렀는데 일요일을 새로운 안식일로 간주한 것입니다.
최초로 한 주를 7일로 정의한 문명은 고대 바빌로니아였는데, 본래 8일이 한 주였던 로마에서는 율리우스력을 도입하면서 같이 도입했습니다.
조르주 역의 파스칼 뒤켄은 실제로 다운 증후군 장애인입니다.
영화 초반에 조르주는 자기가 몽골에서 태어났을 거라고 말하는데, 이는 과거 다운 증후군의 다른 이름이 몽고리즘, 혹은 'mongolian syndrome' 이었던 데에서 비롯됩니다. 다운 증후군 환자의 특징적 외모가 몽골 사람을 닮았다는 이유에서 붙여진 명칭으로, 영화가 출시된 1990년대 후반에도 한국의 병원에서조차 몽골리안 신드롬이라는 병명이 다운 증후군과 병용되었지만 지금은 인종차별적이라는 이유로 사용이 기피되는 단어입니다.
제8요일 OST
줄거리
아리는 은행 직원으로, 세일즈 기법 강사로 일하고 있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리는 자신의 차갑고 계산적인 삶의 태도에 염증을 느낀 부인 줄리와 별거 중에 있어 가족이 그리웠습니다. 아내 줄리와 어린 자매 알리스, 쥘리에트와 함께 살면서 화목한 삶을 살고 싶지만 줄리의 마음은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사실 줄리도 남편이 그리웠지만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한편 다운 증후군을 앓는 조르주는 요양원에서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친구들과 살고 있으며 나탈리라는 여자를 좋아합니다. 주말에는 요양원에 환자의 가족이 찾아와 주말을 함께 보내려고 데리고 가지만 조르주는 데리러 오는 가족이 없습니다. 조르주의 어머니는 4년 전에 사망했지만 조르주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환상과 현실을 오락가락하며 어머니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섭니다.
아리는 딸들과 기차역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바쁜 일정에 정신이 없어 뒤늦게 약속을 기억하고 급하게 갔지만 딸들은 아버지를 기다리다 돌아가고 없습니다. 아리는 알리스의 생일에 중요한 행사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고 대신 생일선물을 사고 줄리와 아이들이 사는 집에 가서 아이들을 보고 아쉽게 다시 돌아옵니다. 아리는 비 오는 밤길에 운전하다 여러 생각으로 잠시 정신줄을 놓아 실수로 지나가던 개를 치어 죽게 만듭니다. 그 개의 주인은 요양원에서 막 탈출한 조르주였으며 아리는 미안한 마음에 조르주를 집에 데려다 준다며 차에 타라고 합니다.
아리는 조르주에게 집을 묻기 위해 대화를 하다가 조르주가 장애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조르주가 집 주소를 말하자 가까운 거리가 아니기에 아리는 조르주를 경찰에 보호 요청을 할까 생각하다가 일단 자기 집으로 데려가 재우기로 합니다.
다음날 아리는 조르주가 초콜릿 알러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리가 잠시 직장에 들러 휴가를 내려고 자리를 비운 사이, 조르주는 차에서 내려 신발 가게에 가서 유부녀 여직원에게 구애를 하기도 하고 운동화를 달라고 떼를 씁니다. 아리는 운동화를 사 주고 집에 데려다 주기 위해 계속 길을 나섭니다.
아리는 조르주의 집을 찾아내지만 외국인이 살고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합니다. 그 외국인은 이미 조르주의 어머니가 4년 전에 사망했으며 조르주의 유일한 보호자인 누나 파비앙의 주소를 알려줍니다. 아리는 조르주를 누나에게 데려다 주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서지만 트럭 운전수에게 장난친 조르주를 보고 화가 난 트럭 운전수는 도로를 막고 트럭에서 나와 해명하는 아리를 무자비하게 구타합니다.
아리는 차 안으로 도망치려고 하지만 조르주는 장난이라 생각하고 차문을 안에서 잠가버립니다. 아리는 분노한 나머지 조르주를 그대로 길가에 끌어낸 다음 혼자 돌아갑니다. 하지만 곧 비가 내리자 다시 돌아가서 비를 흠뻑 맞고 있는 조르주를 차에 태우고 감동한 조르주는 아리를 친구라고 부르면서 끌어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조르주를 누나 파비앙의 집에 데려다 주지만 조르주를 반가워하는 두 조카들과는 달리 파비앙과 자형은 집안 형편을 이유로 부양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족부양을 위해 조르주를 요양원에 보냈던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조르주는 어머니가 죽기 전에 자신에게 잘해 주라고 유언했다고 울부짖습니다. 하지만 동생을 돌봐줄 수 없다고 엄마에게도 말씀드렸다고 울면서 말하는 누나를 조르주는 안아줍니다.
아리는 조르주를 데리고 자기 집에 가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서고 둘은 점차 서로에게 정을 느낍니다.
조르주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가 여직원에게 구애하지만 거절당해 절망감에 빠지고 아리는 그를 달래줍니다.
아리는 아내 집에 가서 줄리를 만나지만 여전히 냉정한 태도에 결국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배출하며 집 안의 물건을 던지고 부숩니다. 아리는 그동안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며 살아왔지만 조르주와 함께 지내다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조르주에게 동화된 것입니다.
조르주는 집으로 돌아오던 아리의 딸 알리스, 쥘리에트을 만나고 알리스의 생일이 14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아리는 아내 줄리와 티격태격하다가 알리스가 냉정하게 이제 가 달라는 말을 하자 충격을 받고 집을 나섭니다. 알리스는 아빠가 그리웠지만 보고 싶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아리는 서러움에 참지 못하고 울부짖는데 그런 아리를 조르주가 달래줍니다. 조르주는 상처입은 아리를 데리고 나무 밑에 가서 쉬었다 가자고 하고 1분간 누워서 휴식합니다. 아리는 때묻지 않고 순진한 영혼을 가진 조르주에게 점점 매료되고 왠지 모를 책임감을 느끼게 됩니다.
둘은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 나가지만 아리는 휴가가 끝나 직장으로 돌아가야 했고 조르주는 다시 요양원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아리는 조르주가 없는 허전함에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고 조르주도 아리와 헤어지고 좋아한 나탈리가 요양원을 떠나면서 더 큰 외로움을 느낍니다.
어느 날 조르주는 요양원에서 미술관 단체 관람갔다가 알리스의 생일이 14일이라는 것을 기억해 내고 친구들과 무리에서 이탈해 차량 대리점에서 직원이 한 눈을 판 사이에 차 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시동을 걸어버립니다. 그대로 아리의 직장에 가서 아리를 부르는데 아리는 조르주를 굉장히 반가워하고 은행 행사에 쓰일 불꽃놀이 장비들도 챙기고 조르주는 차량에 나탈리도 태우고 아리의 집에 갑니다.
아리, 조르주와 그의 친구들은 멈춰 있던 집 근처 놀이기구를 작동시키고 불꽃놀이를 터뜨리는데 아리의 딸들은 이 것을 보게 됩니다. 아리는 불꽃을 터뜨리며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마침내 가족들과 응어리를 풀어냅니다. 그동안 조르주는 나탈리와 사랑을 나누다가 나탈리 부모님이 나탈리를 찾아 다니고 경찰이 출동해 진압하게 되면서 아리와 조르주는 도망칩니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조르주는 자신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아리가 이제 가족들과 재회해서 자신이 필요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리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으며 아리의 지갑을 몰래 챙겨 떠납니다. 하지만 아리는 자신의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되찾게 해 준 조르주가 필요하다며 그를 계속 찾아다닙니다.
조르주는 아리에게 훔친 지갑의 돈으로 먹으면 안 되는 초콜릿을 사서 모조리 입에 다 털어넣고 환상 속에서 어머니를 만나 행복한 표정으로 어느 빌딩 옥상에서 투신자살합니다. 아리는 조르주가 투신자살한 현장을 보고 무척 슬퍼합니다.
아리는 조르주와 지내면서 인간성을 회복해 예전에는 쓰레기차가 길을 막아 교통체증을 유발하면 경적부터 울렸지만 이젠 차에서 내려 웃으면서 그들을 도와줄 정도로 유순해지며 업무보다 가족에 더 집중합니다.
아리는 제8요일에 신이 조루주를 만들었다며 자신에게 찾아온 천사이자 친구였다고 조르주에게 고마워 합니다.
조르주와 찾아왔던 들판에 딸들과 누워 휴식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총평
파스칼 뒤켕과 다니엘 오떼이유는 이 영화로 1996년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공동 수상하였습니다.
우리나라 평점도 8.7로 높게 받았습니다.
나의 리뷰
조르주역을 맡은 파스칼 뒤켕이 연기를 너무 잘해 찾아보니 벨기에 배우로 이 작품외에 4 작품이나 더 출연을 한 배우였습니다. 실제 다운증후군 장애가 있는 배우인데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누구에게나 다 장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외적인 장애가 있을 수도 있고, 내적이나 성격적으로 장애가 있겠구나...
그러기에 서로 부딪히며 또 보듬어주며 살아가야 하는 게 아닐까?
바쁘게만 살아가는 현실에서 잠시 쉬며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