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영화
<아비정전(阿飛正傳, Days of Being Wild)>은 1990년에 제작된 홍콩 영화로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해인 1990년 12월에 정식 개봉되었습니다.
왕가위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이자,
장국영, 장만옥, 유덕화, 유가령, 장학우, 양조위까지
홍콩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들이 총출동한 작품입니다.
감각적인 영상과 절제된 대사, 공허하고도 아름다운 정서로 가득한 이 영화는
왕가위 감독 특유의 스타일을 완성시킨 대표작으로 손꼽힙니다.
줄거리 한눈에 보기
1960년대 홍콩.
자유롭고 매혹적인 청년 '요디'(장국영)는
여러 여성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그는 어릴 적 입양된 후,
생모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자라왔고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려는 사람들을 밀어내며 살아갑니다.
요디는 매표소에서 일하는 순수한 여성 '수리'(장만옥)에게 다가가고
그녀는 그에게 마음을 열지만,
요디는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그녀를 떠나버립니다.
이후 요디는 또 다른 여성 '미미'(유가령)와도 관계를 맺지만
그녀 역시 그에게 온전히 다가가지 못한 채 상처를 받게 됩니다.
요디는 친어머니를 찾아 필리핀으로 떠나지만
그곳에서도 결국 문전박대를 당하고,
기차에서 도박으로 벌인 시비 끝에 총에 맞는 사건에 휘말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생의 마지막을 맞이하게 됩니다.
한편, 요디를 짝사랑했던 수리와 미미는
각자의 상처를 안고 허무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견딥니다.
어두운 방에서 말없이 머리를 넘기며 옷매무새를 고치는
또 다른 청년(양조위)이 등장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예고하는 듯 영화는 조용히 막을 내립니다.
영화의 매력 포인트
장국영의 압도적인 존재감
무심하고 쓸쓸한 요디라는 인물을 통해 장국영은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고독하고 매혹적인 청춘의 얼굴을 보여줍니다.
왕가위 감독의 미장센과 시간의 감각
슬로우 모션, 반복되는 장면, 라디오의 음악 등으로 표현되는 왕가위 특유의 연출은
시간이 흐르는 감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며
관객으로 하여금 인물의 내면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기억에 남는 대사와 1분의 상징성
“기억해.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너와 나는 1분 동안 연인이었어.”
짧은 시간이지만 진심이 깃든 순간을 평생 간직하려는 마음이
이 영화의 모든 인물들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대변합니다.
청춘의 공허함을 담은 음악과 색감
팝 음악과 클래식이 어우러진 사운드트랙은
인물들의 외로움과 정서를 감싸며
장면 하나하나에 깊은 감성을 불어넣습니다.
장국영의 전설적인 춤 장면
속옷 차림으로 방 안에서 음악에 맞춰 혼자 춤추는 요디의 모습은
그의 고독함과 자유로움을 동시에 담아낸 상징적인 장면으로
이 영화의 감각적이고 독특한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순간 중 하나입니다.
이 영화가 남긴 것
<아비정전>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청춘의 외로움을 그려낸 작품입니다.
말보다 눈빛과 침묵이 많은 이 영화는
관객이 스스로 감정을 발견하도록 여백을 남겨둡니다.
모든 관계가 끝나고도 잊히지 않는 ‘1분’처럼,
이 영화 역시 짧지만 강하게 마음속에 남는 인상을 줍니다.
왕가위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영화가 시간과 감정을 어떻게 포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아시아 영화사의 흐름을 바꾼 전환점을 만들어냅니다.